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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이민] 양봉생활은 어떨까? 비 키퍼(Bee Keeper)와의 인터뷰

뉴질랜드 외국인 2020. 1. 1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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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뉴질랜드 외국인입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가 아닌 뉴질랜드에 정착하신 다른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클랜드에서 양봉생활을 하시는 양봉러 이순기님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뉴질랜드로 이민을 생각하시는 분들 중 나이가 젊은 20~30대 이민 방식 외에도 다른 방식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1. 언제 뉴질랜드에 오셨는지, 그리고 과정

 

2001년 큰 딸을 뉴질랜드에 있는 이모집에 유학을 먼저 보내고 2002년 나머지 가족이 이민을 왔습니다.

IMF로 나라가 뒤숭숭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상술이었던것 같은데 그때는 한참 교육이민, 환경이민, 은퇴이민 등등 붐이 일어났었습니다. 딸들 교육만 마치고 다시 한국에 돌아 갈 예정으로 간단하게 마음 먹고 이민을 와서 현지 정착할 노력은 하지 않고 애들 뒷바라지하며 낚시와 여행으로 소일을 했는데 장, 단점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어렵게 이민을 오신분들도 밑바닥부터 기반을 다지신분들은 10년쯤 지나면 대부분 경제적 안정을 찾는데 비해 심심치 않게 자녀교육, 가정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겉으로는 모든 조건이 완벽해 보여도 그래서 더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도 있으니 인생이란 참 묘한것 같습니다.

 

 

 

2. 양봉의 힘든 점, 그리고 양봉의 매력은 무엇인지요?

 

우연한 기회에 뉴질랜드의 양봉과 마누카꿀이 사업성과 장래성이 크다는 뉴스를 접하고 무조건 집에서 가까운 양봉원에 찾아가서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이 양봉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때 마침 한국에서도 은퇴후 노후대책으로 양봉이 유망하다는 방송이 나간 직후라 양봉 붐은 대단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론 교육과 전국의 양봉 고수 농가들을 찾아 다니며 견학과 공부를 하면서 생산자는 넘치는데 판매 루트가 한정 되어 있고 판매 방식이 재래식이라 유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양봉 선진국들의 노하우를 열심히 벤치 마킹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누라가 병에 걸려 큰 수술을 하고 로얄제리가 환자들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완치 판정을 받은 후 뉴질랜드로 돌아가 취미 양봉으로 몇통만 하면서 로얄제리, 화분, 꿀을 채취하여 식구들과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자는 생각을 했는데 뉴질랜드에서 상업적으로 생 로얄제리를 생산 판매하는 회사가 한곳 밖에 없고 생산량도 매우 작다는 것을 알게 되어 뉴질랜드에서 생 로얄제리를 생산하여 로컬및 해외로 수출하면 사업성이 있겠다는 판단으로 로얄제리 양봉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의 양봉은 처음이고 물가가 비싸므로 목공기구를 구입하고 폐 빨레트를 주워 가장 간단한 양봉자재부터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목공기계 사용이 서툴러서 크고 작은 사고는 매일 일어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제품도 허접했지만 6개월정도 지나자 어느정도 필요한 자재는 금방 만들수 있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뉴질랜드에서의 로얄제리 생산은 인건비와 생산성 때문에 불가능 하다고 했지만, 현재는 로얄제리 제품의 시험 생산에 성공 했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몇가지 개선점을 찾아내서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제품 생산을 할 계획입니다.

 

 

3. 뉴질랜드 정착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아직도 어려운 점

 

대부분 이민을 와서 제일 큰 문제가 언어와 문화가 다른 것과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한인 커뮤니티에 전문가분들도 많지만 일반인들은 개인이 경험하거나 불확실한 소스를 통한 부분적으로만 맞는 정보를 접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뉴질랜드 교민 사회의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이는 최소한 몇년정도는 이곳에서 살아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흔히 이민 생활을 한국에서 꿈꾸던 모든 것을 얻는 대신에 한국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소수의 혜택 받은 사람들은 두나라의 장점을 모두 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4. 이민을 고려하고자 하는 비슷한 길을 걷는 한국인분들께 조언을 하신다면?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이민이나 가볼까? 하고 생각하시는분들이 계시는데 3만불 소득 나라에서 만족한 삶을 못 살면 어디를 가도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이 아주 못 살던 60년대 - 80년대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이민을 선택 했는데 요즘은 삶의 질을 위해서 이민을 간다면 경제력은 필수입니다.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돈을 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두배는 일해야 하거나 남들 가슴에 못을 박지 않는 한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도 단시간에 벌고자 한다면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하고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는 그것 때문에 크게 후회할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꼭 이민을 오고 싶으면 먼저 답사나 여행이나 한달살기를 통해서 충분히 현지 상황을 확인 후 시간을 가지고 현지에서 생업으로 연결시킬수 있는 기술을 배운후 삶의 질에 대한 기대치를 절반으로 낮춘 후 10년정도는 고생할 각오로 오셔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 가시는분들이 많습니다. 이민 브로커들이 이야기하는것처럼 이민을 오기만 하면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천국 같은 생활을 할수 있을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것을 다 포기하고라도 하고 싶은 한가지가 있다면 이민을 오셔서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벌써 뉴질랜드 생활이 만으로 18년 ~ 19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초딩이었던 작은 딸은 치과 의사가 되었고 중딩이었던 큰딸은 응급 닥터가 되어 자기 분야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열심히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5. 향후 계획은요?

 

베낭여행을 좋아하던 내가 나이가 들어 베낭 무게가 힘겹게 느껴지던해 오토바이 베낭여행이라는 컨셉을 떠올리고 유라시아 대륙 왕복을 비롯하여 일본 아시아 투어를 마쳤고 한번에 한 대륙별씩 전 세계 오토바이 여행을 마치는 것이 첫 목표입니다.

 

 

양봉 사업이 어느정도 본 궤도에 오르면 딸들과 함께 의료봉사 투어를 꿈꾸고 있습니다. 네팔,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오지 마을을 선정해서 딸들은 의료 봉사를 하고 나는 현대 양봉을 가르쳐서 그들이 자립할수 있도록 도와주는것으로 나의 이번 생을 회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처음 의도도 좋고 중간의 과정도 좋고 나중에 결과 또한 좋은 일을 선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비키퍼 이순기님이 꿀과 함께 보내주신 메모를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파는 꿀과 직접 양봉한 꿀은 향이며 색이 확연히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양봉을 취미로도, 직업으로 하는 분들이 한국보다 훨씬 많은데요. 얼마 전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양봉 체험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체험할 수 있도록 체험 학습 현장도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찾기 힘든 양봉 직업을 하시는 이순기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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