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좀 덜 해졌지만 요 몇달 전만 해도 이직을 하고 싶은 욕구가 불쑥 불쑥 떠오른 때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인 즉슨


첫째, 이 회사에서 커리어로 배울만 한 점이 별로 없다는 것이고 (자기개발 따로 혼자 하지 않는 이상) 

둘째, 그래서 매너리즘에 빠져 스킬이 늘지 않고 있다. 첫번째 이유 하나만으로 이직 결심하기에는 충분한 상황.


지금 회사는 아이 낳고 정착해서 편하게 다니고 싶으면 딱! 좋은 회사다. 하지만 한번 이 곳에 오랫동안 발을 붙이면 더 이상 다른 회사는 못 다니고, 스킬도 고만고만 해지고 그냥 여기서 커리어가 끝일 것 같은 예감. 물론 회사의 대우가 좋아서 꽤 오랫동안 이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적게는 20년 (적게-_-임) 최장 오랫 기간 다니신 분은 지금 현재 42년 째 회사를 다니고 계신다. ㄷㄷ 이제 정년은퇴 할 일만 남음.




그래서 이직을 알아보고 있는데, 가장 큰 걸림돌. 바로,


나는 시니어 레벨인가? =_=



시니어 레벨을 설명하자면, 

시니어는 다른 초급 및 중급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멘토(Mentor)가 되어줄 수 있을 만큼 실력과 커뮤니케이션, 어드바이스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경력 연차로 따지면 최소 10년 이상 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물론 실력에 따라 기간이 짧아지기도 한다)


필자 외에도 해외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도 느끼는지 모르겠다. 꽤 많은 스킬과 능력이 있는데 커뮤니케이션 스킬(즉 영어)이 잘 안 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치보다 낮은 수준으로 대우 받는 그 느낌 말이다. =_= 내가 만약 영어를 여기에 오랫동안 산 사람처럼 썼다면 내가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나 말고도 프랑스에서 온 엔지니어도, 우크라이나에서 온 개발자도 똑같은 입장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사진 불펌-_-




물론 이 곳에서는 직급과 나이는 따라간다는 생각이 한국보다는 훨씬 덜 한 편이다. 

한국은 나이가 많거나 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면 능력 관계없이 직급이 올라가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 곳은 직급이 낮아도 연봉이 높은 경우가 있기도 하니 말이다. 돈 많이 받으면 직급이야 뭐 상관없지 않은가; 물론 직급이 올라가면 돈을 더 받을 확률은 있겠지만 그것이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가 어떤 직종,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게 작용되는 듯 하다.


나 같은 경우야 한국에서 일을 오랫동안 하지 않아서 직급, 레벨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것이 덜 한 편이라고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분이 뉴질랜드에 정착하기 위해 다시 낮은 레벨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막연함은 어찌할 것인가. 다행히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의 부족한 부분(영어)을 알면서도 다른 좋은 부분(스킬이라던지, 손이 빠르다던지)을 알아주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 회사에 계속 남아 있는 듯하다. 


내 코가 석자인데, 내가 생각해도 주니어들을 잘 어드바이스 해 줄 자신은 별로 없다. 시니어 레벨로 올라가려면 일단 커뮤니케이션, 미팅 스킬, 어드바이스 스킬 등을 열심히 해야 할 듯 하다. (뭐 작업스킬은 당연하고) 그럴려면 또 영어 공부로 문제가 돌아간다. 아 시니어 레벨, 나는 언제 될 수 있을까? 한 5년 더 하면 되려나. 













내 블로그에 온 사람들이 검색할 때 '뉴질랜드 페미니즘'이라고 검색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나에게 페미니즘이나, 뉴질랜드에 관한 질문들을 하면서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하'를 위해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나에게 메갈 또는 워마드라며 하는데 난 솔직히-_-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요새 페미니즘(feminism)이 뜨거운 감자로 한국 사람들에게 이슈화가 되고 있다. 


나에게 페미니스트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음, 전 그런 것 같은데요?" 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여성 인권이 한국에서나 세계 어디에서든 여성 인권 신장을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로 이민 온 이유 중에 하나도 여성으로써 퇴직때까지 평생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였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여성으로써 한국에서 남성이 주도하는 사회에 커리어 단절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커리어를 이어가는 훌륭한 여성들은 많았지만, 나는 그만큼 훌륭한 편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뉴질랜드 페미니즘의 글을 작성하면서 페미니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한국의 페미니즘, 그리고 한국의 부당한 여성 대우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받았던 의식적으로나/무의식적으로나 배웠고 감당했어야 했던 그런 경험들이 사실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뭐,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여자는 어차피 시집이나 가니 대학은 뭐하러 가' 라는 이야기를 듣기 일쑤였다. 결국 안되는 머리로 4년제 대학까지 간 것도 다 반항심에서 한 것이였다.

여성은 이래야 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정확히 '그 반대로' 행동하려고 했다. '여자니까 내가 들게'라고 배려해 준 것도 '아냐 내껀 내가 들겠어' 라고 거절하고 오히려 남성에게 가방을 들어달라는 여자를 (솔직히) 못 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왜, 너도 손 있는데 그 조그만 가방을 왜 너의 남자친구가 들어주니? 라고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다시 넘어와서 한국에 있는 여성들의 부당한 대우를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왠 일. '페미니즘 커뮤니티'라고 생각했던 워마드라는 집단이 사실 거의 일베와 다름 없는, 익스트림한 사실에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는 언니가 친절하게 워마드 때문에 여성의 불리한 입장을 이슈화 하는 것이며 양면을 가진 곳이라고 가르쳐주는데도 불구하고, (내 기준에서) 페미니즘이 아닌 남성 혐오증의 글들로 도배 되고 있었다. 여성/남성 혐오증과 페미니즘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을 정당화 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로 정의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뉴스로만 접하는 (일반)사람들은 곧이 곧대로 페미니즘이란 저렇게 익스트림한 것이구나라고 왜곡되게 배우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란?



페미니즘의 정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페미니즘이란 모든 인간 평등을 기준으로 (양성 평등이라고 썼더니 남성이 쓰는 단어라고 해서-_- 돌려 적었다) 여성의 인권 신장을 노력해서 하는 운동을 페미니즘이라고 정의하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이 여러가지가 있듯,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약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누가 강하게 하든, 어떤식으로 표현을 하든 자기 의견이니까 그 표현을 존중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할 점은, 지금 내가 하는 것이 남성혐오인가? 아니면 페미니즘인가?를 정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이 정립되지 않고 싸운다면 명분이 없다. 흔히 막장이라고 말하는 '일베' 가 하는 일과 다름없다. '일베'가 했다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처할 것인가?에 답변에 대해서는 'They go low, we go high'로 답하고 싶다. 

그들이 그렇게 한다고 우리가 그렇게 맞대응 하는 것을 합리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베'를 합리화 하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쟨 되고 왜 난 안되요?는 (안타깝지만) 10대가 써 먹을만 한 논리이다. (물론 나도 가끔씩 그런다 ㅜ)


나의 페미니즘에 글에 댓글을 다는 남성들의 의견을 많이 들으니, 여성의 의견도 듣고 싶어져서 어느 한 커뮤니티에 물었다. 하지만, 내가 시대를 못 따라가는 건지 내가 말하는 투나 단어들이 '남성적'이다라는 의견을 들었다. 블로그에도 글을 쓰면서 '남성인 줄 알았는데 여성이네요' 라는 글을 가끔씩 접한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내가 여성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남성적으로 말투를 쓴다고 하여 내가 여성이 아니라면, 여성적 말투를 쓰는 남성은 남성이 아닌가? 그냥 인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코르셋과 탈 코르셋 



말투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니 탈 코르셋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한국의 외모지상주의는 한국 내에서 뿐이 아닌 국외에서도 '성형수술'로 유명할 정도다. 한국은 '유행' 이라는 트렌드가 항상 있고, 그것을 따라가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이라고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 의해, 미디어에 의해 그렇게 노출된다. 그것을 스스로 깨고자 하는 탈 코르셋 운동에 나는 매우 호의적이다. 하지만, 굳이 꼭 화장을 안 한다고 해서, 머리를 짧게 자른다고 해서 탈 코르셋인가? 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탈 코르셋을 하면서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가며 그것이 남들이 원하지 않는 모습이라도 자기 스스로 기쁜 모습이라면 그것이 탈 코르셋이라고 생각한다. 10센치가 넘는 힐을 신으면서 남들이 뭐라고 손가락질 해도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면 그것이 탈 코르셋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현상을 보고 접하며 느끼는 것은, 

한국 사람들 모두가 서로 너무 각박하고 여유가 없어서 실수조차 용납하기 힘들어 하는 모습에 안타깝기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여유가 없는데 서로의 의견을 들어 줄 시간이 있을리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뜨거우면, 잠시 가만히 두고 식히는 것도 어찌보면 이성적으로 보는 한 방법 중에 하나일 것이다. 뭐-_- 페미니즘 질문 하나 하는 것에도 사람들이 민감하다. 

하지만 언제 어느시간이 되었든, 우리는 이 문제를 들쑤셔서 오픈하고, 깊게 깊게 이야기를 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덮고 삭제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만이 수가 아니니까. 한국 여성분들, 고생이 많으시네요. 






1 - 백종원님이 나오는 골목식당의 뚝섬 편이 그렇게 호환마마처럼 어마무시하다고 하길래 골목식당 뚝섬 편 시청. 

보는 내내 암유발 일으키는 프로그램인데, 너무 재밌어!!! 하며 모든 전편 시청 완료. 썰전 아니면 예능 안 보는데 골목식당 클리어 후, 이제는 3대 천왕까지 보고 있다. 보면 볼수록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분이다.


특히 필 스트리트 편에서 백종원님이 그 젊은 떡볶이 사장님한테 비법 가르쳐주면서 "잘 되면 다른 어린 친구들 도와줘" 라고 말하는데 거기서 짠 ㅜㅜ 선의를 배푸시는구나를 느꼈다. 마음이 아름다웠다. 유시민 작가님이 썰전에서 빠지셨으니 이제 백종원님 프로그램으로 옮겨 타야 하는가..






2 - 동생이 대학 졸업반이라 취업하기 전 여행도 하고 누나도 볼 겸 뉴질랜드에 9일 정도 있다가 갔다. 공항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말로 설명하기 애매한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 다른 이민 온 사람들도 이런 걸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이나 친구가 왔다가면 느낌이 묘하다. 마치 한국의 추억이 멤돈달까. 그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하루 이틀은 마음이 미묘한 상태로 지내다가 다시 평소대로 돌아 온다. 





동생이 나이 차이가 꽤 있어서 어리게만 봤는데 나보다 요리를 잘 한다=_= 뭐 뭐지, 대체 한국 수퍼에서 뭘 샀길래 맛있는거야. 참 세월 빨리 간다. 





한국에서 월드컵을 보는 동안 이 둘은 대신 피파 게임을.. 



3 - 티스토리 관리자 모드에서 방문자 경로를 확인 할 수 있는데, 사이트 도메인 주소만 보고도 스팸이라고 딱 느껴지는 것들을 지우고 지우다보니 한 100개의 스팸 사이트를 차단한 것 같다-_- 티스토리 보안쪽으로 이런 것들 못 들어오게 할 수 없나 싶기도 하고 불만이 많다. 티스토리가 다음(Daum)에 귀속 된 걸로 알고 있는데 한국의 가장 큰 포털 웹사이트 중 하나가 이렇게 보안쪽으로 신경쓰지 않고 있다니. #티스토리관리자 #제발보안좀신경써주시길 #아직까지http #https로바꿔주세요





히피 트랙 마지막 날, 

히피 헛에서 도착 지점인 코하이하이(Kohaihai)까지 총 16.5km 거리를 걷는 일정이였습니다. 

이 날은 미리 예약한 셔틀버스가 1시까지 오기 때문에 그 전에 도착해야 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발하였습니다. 






아침 7시 전에 히피 헛(heaphy hut)을 떠났을 때는 깜깜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곧 주변이 밝아졌습니다. 





이 구역은 해안을 따라 걷는 구간.





공기도 상쾌하고, 여태껏 히피 트랙에서 볼 수 없었던 바다를 이 마지막 날에 볼 수 있었습니다.





해안가라 바람이 조금 불었네요. 그러나 확 트인 해안가를 보니 여태껏 히피 트랙에서만 보아왔던 정글과는 색다른 느낌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팜 트리 - 코코넛 나무가 해안가를 따라 쭉 자라 있는 모습이 장관이였습니다. 





이런 다리도 몇 개 건너고





일찍 일어나서 출발해야 했던 이유는 1시까지 도착하는 셔틀버스 때문이기도 했지만, 스코츠 비치(Scotts Beach) 의 조수 시간대도 맞추어야 했습니다. 

해안가를 걸어야 하는 이 스코치 비치는 썰물이 가장 빠져나갔을 때를 기준으로 양쪽 두 시간 (밀물에서 썰물로 내려갈 때와 썰물에서 밀물로 올라올 때) 을 맞춰서 건너야 합니다. 이 조수간만에 대한 정보는 히피 헛에 게시해 놓은 조수 시간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이 구간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끌고 가야 하는 트랙 ㅎㅎ 





걷다보니 저 멀리 도착지점이 보입니다. 전 날 32km를 걸어서 그런지 16km의 트랙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졌습니다. 5시간 정도 예상했던 거리를 4시간으로 빨리 끝마쳤습니다. 





코하이하이(Kohaihai) 시작 지점에 도착!





그리고 30분 뒤 도착한 자전거를 탄 4인방. 

두 쨋날 밤 쎅슨 헛(Sexon hut)에서 만났는데, 셋째날도 같은 헛에 머물러서 이야기를 주고 받아서 약간은 친해진 사람들 입니다. 하이킹을 같은 날 시작하는 사람들은 스케줄이 비슷하게 맞기 때문에 헛에 머물면서 친해지기도 합니다. 





12시 30분 정도 되자 미리 도착한 셔틀버스! 친절한 키위 할아버지였습니다. 코하이하이에서 넬슨까지는 5시간 정도 걸려서 저녁쯤에 도착했네요.






히피 트랙에 대한 그 전 글들을 보려면 


[뉴질랜드 남섬 여행] 남섬 히피트랙(Heaphy Track) 트램핑 - 1 


[뉴질랜드 남섬 여행] 남섬 히피트랙(Heaphy Track) 트램핑 - 2 






어제 급격히 방문자가 뛰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뉴질랜드 총리로 많이 방문 하는 걸 보고 '아 총리가 출산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한명의 임신과 출산이 한국에서 이렇게 유명하다니! =_= 예전에도 제신다 아던에 대한 글을 몇 개 작성하였지만, 모아서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제신다 아던 관련 글을 보려면


뉴질랜드 총리 임신한 소식 - http://korean.jinhee.net/363  


[뉴질랜드 이민] 선거 결과, 그리고 새로운 총리 - http://korean.jinhee.net/337 


[뉴질랜드 생활] 뉴질랜드 선거일이 하루 남았다. - http://korean.jinhee.net/323




전 세계적으로 임신과 출산으로 이렇게 유명한 건 처음이다. =_= 뉴스에서 '제신다 아던이 아이가 오늘 나온다' 등의 제목을 보면서 만약에 내가 출산을 한다면 이런 적나라하게 소식을 알리는 것에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데.. 어쨌든 그녀의 출산 소식은 BBC, CNN에 또 한번 메인을 장식했다.

그녀의 파트너 클라크 게이포드의 트위터에 사진이 뜨는 순간 모든 미디어가 집중.









제신다는 총리직은 잠깐 내려놓고 출산 휴가로 6주 동안 휴식기를 가진 후 다시 국회로 복귀 할 예정이다. 그 동안의 부재 동안 바로 밑에 부 총리인 윈스턴 피터가 총리직을 대신 할 예정. 참고로 윈스턴 피터가 이끄는 당은 우익이 강하고 노년층에 인기가 많다. 제신다가 있는 레이버당은 진보적.




그에 대한 정보는 링크 - https://www.stuff.co.nz/national/politics/97547465/a-brief-history-of-winston-raymond-peters




제신다는 총리직에 있는 사람으로써 세계에서 두번째로 출산을 한 사람이 되었다. 클라크 게이포드와 제신다는 결혼은 안 했지만, 같이 살고 있고 사실혼 관계, 즉 파트너쉽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결혼 안해요?" 라고 반문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뉴질랜드에서는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법적 보장이 되어있는 것은 물론, 사람들 인식도 파트너쉽에 관대하여 거의 결혼과 별 차이를 못 느낀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주위에만 봐도 아이를 낳아도 결혼은 하지 않고 파트너 쉽 상태로 같이 살면서 아이들을 기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뉴질랜드 국제 연애] 파트너쉽 관계? 결혼 한 사이? - http://korean.jinhee.net/348


총리가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제신다가 임신 기간 중 영국에서 정상 회의를 가지는 동안 게이포드는 영국 연합국들의 정상들이 모여 미팅하는 배우자를 위한 프로그램에서 마치 한 명의 남성을 차지해야 하는 데이트 프로그램에 나온 것 마냥 그 말고는 전부 여성인 사진이 화재였다. 모든 정상급 회의에서 대부분 '남자' 가 국가를 대표하는 총리직을 맡기 때문에 그들의 배우자는 대부분 퍼스트'레이디' 즉, 여성이 대부분인데, 게이포드만 달랑 남자였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사람들도 이 사진이 웃겼는지 예능 프로 중에 하나인 '버첼러' 와 비교하기도 했다. ㅋ


위는 실제 퍼스트 레이디 앤 젠틀맨의 사진 / 아래는 예능 프로 중 하나인 버첼러라는 프로. 참고로 이 프로는 남자의 프로포즈를 받기 위해 여성들이 치열하게 싸운다.



서양 국가가 아무리 개방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들도 이런 현상이 생소하고 신기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국가 정상들은 대부분 남성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제신다가 최초의 여성 총리가 아니다. 그 전에도 제신다와 같은 여성 총리가 있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에 그녀를 믿고 지지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한국도 박근혜라는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는 '박근혜가 했는데 여성이라 망했기 때문에 여성 대통령을 뽑으면 안 된다' 라고 근 시안 적인 생각을 가지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제신다 총리의 케이스는 전.혀 다르다. 여성이란 것은 똑같지만, 박근혜는 박정희라는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나타났다. 박정희 시대 때의 국가 발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그의 혈육 - 그 사람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이 - 을 뽑아준 것이다. 게다가 1970년 대 때는 박근혜를 공주 취급하지 않았던가. 로열 계급이라 생각하고 뽑아주는 것도 큰 부분을 차지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은 박근혜가 불쌍해서 뽑아준다는 의견도 많다) 




6주 출산 휴가가 지나면 다시 제신다는 워킹 맘으로써 (또는 국가 수장으로써=_=)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그럼 육아는? 그 역할은 게이포드가 될 것이다. 둘 중 한 명은 육아를 해야 하는데 -_- 제신다가 국가 최종 보스이기 때문에 생각 할 것도 없이 게이포드가 육아에 전념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녀를 위한 게이포드의 전폭적인 지원과 커리어 희생에 마음이 짠하다. 그도 다른 남성처럼 커리어가 탄탄하고, TV의 낚시 채널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커리어를 내려놓고  (첫 케이스는 아니지만) 남자들이 하는 흔치 않은 육아 생활을 함으로써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수면으로 떠오르게 만든 것이다. 전업주부는 자연스럽지만 전업아빠?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뉴질랜드에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한국은 아직도 거부감을 보인다는 것을 잘 안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여자가 돈을 더 많이 벌면 남자가 기가 안 산다, 결혼도 안하고 속도 임신한다, 여자가 기가 너무 쎄고 드세다, 남자가 전업주부나 하는 거보니 능력이 없다 등 편견 가득한 글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과연 이 들 커플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날이 한국에 올까? 여자가 일하고 남성이 전업주부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을 한국에서 보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는,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한국에서도 이런 커플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는 건 너무 먼 이야기 같다. 







저번 글에 이어 작성합니다.

셋째 날 쎅슨 헛(Sexon hut) 에서 히피 헛(Heaphy hut)까지는 무려 32km를 걸어야 하는 일정이였기 때문에, 일찌감치 아침 7시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자신의 걷기 페이스가 1km에 얼마나 걸리는지 대략 측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언제 출발해야 하고 언제 도착할 지 대략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평균 1km에 15분 정도 걸리는 것을 가정으로, 4km에 한 시간, 32/4 = 8시간 정도 걷는다고 생각하고 아침 7시에 출발했습니다.


걷기 시작했을 때는 주위가 어두웠는데 서서히 밝아지는 것을 보니 오히려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뭔가 부지런한 느낌.





첫 12km는 평평한 길로 이어졌다가 그 이후는 내리막길이 쭉 이어졌습니다. 히피트랙은 여름에는 오직 하이커(hiker)들, 즉 걷는 사람들이 이 트랙을 주로 이용하지만 겨울에는 산악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산악 자전거를 하는 사람들이라 내리막길에는 뒤에 자전거가 혹시 내려오고 있는지 소리를 들으며 내려와야 했습니다. 히피트랙의 단점 중에 하나이기도.





이끼로 우거진 나무 아래에 도랑길을 지나가기도 하고,

엄청난 크기의 라타(Rata) 트리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걸어가다가 만난 레인저(Ranger), 우리말로 하면 헛 관리자 정도 되겠는데요. 이들이 하는 일은 헛 마다 들리면서 헛이 청결한지,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워넣고, 고치고, 보고하는 관리자 정도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치는 것에도 수준급이어야 하고 15키로는 거뜬히 넘는 가방을 지고 오랫동안 걸을 체력 및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풀과 자연에 대한 상식도 있어야 하는.. 간달프급 분들이 레인저의 일을 합니다. 물론 나이도 간달프 급.... 근데 걷는 속도가 한참이나 젊은 우리보다 훨씬 빨랐다는 것이 함정.. ㄷㄷㄷ





히피트랙은 정말 정글 같은, 사람의 손이 확실히 다른 트랙들보다 덜 닿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각 구간마다 느낌이 확확 바뀔만한 나무와 풀들의 종류들이 있었네요.





그렇게 하루 종일 내리막길을 걷고, 지쳐갈 때쯤 보이는 히피 헛. 아침 7시에 시작해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였습니다. (1시간 아침, 30분 점심 포함) 우리보다 늦게 쎅슨 헛을 출발한 이들은 벌써 자전거를 타고 히피트랙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히피 헛 바로 앞에는 강과 바다가 연결된 하수가 있어 더운 날 바로 해변에 갈 수 있는 조건입니다.

다만 히피 트랙은 샌드플라이(Sandfly)라고 해서 모기처럼 사람을 무는 날파리류가 있는데, 대부분 강 근처에 있어서 여간 귀찮은 종이 아닙니다-_- 모기는 샌드플라이에 비하면 아주 작아서 잡기도 힘들고 갯수도 모기에 비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몸을 두를 수 있는 긴팔이나 긴 바지는 꼭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추운 날이고 하니 사람들이 장작을 모아서 캠프파이어를 합니다.





히피 헛 앞에 있는 바다는 서해라 물살이 셉니다. 뉴질랜드 대부분 서해쪽에 위치한 바다는 험해서 파도가 높아 서핑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합니다.





석양을 보려 했으나 날이 너무 흐려서 실패. 대신 아이들 뒷 모습을 찍었습니다. 





히피 헛 근처에 있는 레인저가 머무는 작은 헛. 팜 트리(palm tree) 코코넛 나무들에 섞여 마치 태평양 섬처럼 보입니다.





사진이 많아져서 다음 글로 다시 이어 작성하겠습니다=_=

이 전 글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뉴질랜드 남섬 여행] 남섬 히피트랙(Heaphy Track) 트램핑 - 1



"브라이드메이드? 난 그런 거 필요 없는데-_- 꼭 해야 해?"


"나 두명 할 거니까 너도 두명 해야지 균형 맞추려면"



확실히 한국에서 하는 결혼과 다르구나를 느꼈을 때는 브라이드 메이드와 그룸스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다. 나에게 브라이드메이드를 정하라니, 공주놀이할 때도 공주보다 그 옆에 시종역할이 더 편한 내가, 심지어 결혼식 중심에 있는 것도 모자라 메이드(maid)까지 두어야 한다니.



브라이드메이드 (Bridemaids)


나의 아름다운 두명의 브라이드메이들과 함께 (내가 키가 제일 작다-_- 힐 신었는데)



여자 측의 들러리를 브라이드메이드라 한다. 브라이드메이드는 브라이드(Bride) 즉 신부의 메이드(maids) 역할을 하는데, 신부가 원하는 사람으로 무조건 뽑는다. 브라이드메이드 기준은 브라이드와 얼마나 '친한가' 인데, 후에 서술하겠지만 '친한가'도 중요하지만, '신부를 얼마나 도와줄 수 있는가' 도 중요한 조건이 된다. 


인수는 1명부터 시작해서 많으면 10명까지 천차만별인데 신부의 들러리가 많으면 많을 수록 (정신도 없고) 예식이 커지는 느낌이 드는데, 일반적인 경우 대략 2명에서 4명 사이를 둔다. 

브라이드 메이드 중에 제일 친한 한 명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을 메이드 오브 어너 "Maid of honor" 로 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은 신부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어시스트를 해주고 결혼식을 진행하는데 다른 메이들보다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누구를 어너로 두지 않고 그냥 둘 다 똑같이 했다.  



그룸스맨(Groomsmen)


신부에게 브라이드 메이드가 있다면 신랑측에는 그룸스맨(Groomsmen)이 있으며, 똑같은 역할을 한다. 신랑을 옆에서 도와주고, 결혼식이 잘 진행되도록 도와주는데 영화에서 보면 이들이 결혼식 반지를 보관하는 일을 한다. 제일 친한 사람을 베스트 맨(Bestman) 또는 맨 오브 어너(Man of honor)로 부른다. 






선정 기준?


브라이드메이드와 그룸스맨을 선정하는 기준은 없다. 자신이 제일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를 고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 않고, 할 사람이 많으면 결혼식에 꼭 참석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고르는 것이 좋고, 결혼 진행과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대략 좀 아는 센스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좋다. 브라이드메이드를 해달라고 요청을 받는다는 사실은 여기서는 약간의 영광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그만큼 자신을 신뢰하고 가깝다는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한국에 있는 제일 친한 친구는 임신 때문에 오지 못하고, 또 다른 한 친한 친구는 뉴질랜드에 올 수 있다고 기약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뉴질랜드에서 사귄 친구들 중에 제일 친한 사람을 선택했다. 한명은 내가 거의 뉴질랜드에 온 기간만큼 알고 지낸 한국 언니와 웰링턴에 도착해 처음 사귄 키위 친구를 브라이드메이드로 삼았다. 한국인 한명, 키위 한명.


P도 가장 친한 친구가 영국에 있었지만, 그 친구가 온다고 기약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뉴질랜드에서 만난 가까운 친구 두명을 그룸스맨으로 삼았다.






그들이 하는 일?



그들이 하는 일은 예비 신부를 위한 헨스(Hens) 파티 또는 신랑을 위한 스태그(Stag) 파티를 준비하는 것 부터 시작한다. 결혼 하기 전 신랑 신부가 술을 진탕 마시며 즐기는 파티 같은 것을 여기서는 헨스(암사슴) 스태그(숫사슴) 파티라고 하고 결혼식 1주~한 달전에 파티를 열어주는 것을 진행한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안, 바쁜 신랑 신부가 필요한 장식 및 예약 등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정말 사람마다 다 다르기도 하다. 나의 경우는 두 브라이드메이드가 육아와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관계로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했는데, 만약 브라이드메이드와 그룸스맨이 그런 것을 잘 안다면 도움을 많이 받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약간 남았던 건 사실이다 -_-; (결혼식 전 날 밤 10시까지 결혼식 리셉션 꾸미느라 힘들었다 ㄷㄷㄷ)


그리고 그들은 결혼식 당일, 리셉션에서 저녁을 먹은 후 돌아가며 인사 및 건배를 위한 짧은 소감 및 스피치를 한다. 스피치는 대략 신랑 또는 신부가 어떤 사람이였고, 같이 경험했던 추억들을 공유하는 글로 이루어진다. 




신랑과 신부가 그들에게 해야 할 것은?



브라이드메이드와 그룸스맨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그들의 메이크업, 헤어, 드레스 및 신발, 부케 등 전반적인 것을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각 나라마다 내는 비용이 다른데, 나 같은 경우는 드레스는 내가 골랐기 때문에 드레스 비용을 지불했고, 그 외 부케 등 다른 것들도 지불했다. 단 하나, 신발은 그들이 직접 구매했다. P의 그룸스맨들은 P와 똑같은 옷, 즉 스코트랜드 전통 의복을 입어야 해서 구매보다는 렌트를 선택 하였다. 만약 일반 수트를 입었다면 그들에게 정장과 넥타이나 보타이(나비넥타이)를 사주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그들의 아웃핏 외에 착용하는 악세서리 및 장식들은 선물로 주는 방식을 취하여, 결혼 이후에도 그들의 악세서리 등을 소장하는 것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P는 그들에게 위스키를 담을 수 있는 메탈로 만들어진 군대식 술 병을 선물로 주었고, 나는 목걸이 및 귀걸이 등을 선물로 주었다. 






Asos.com





이런 서양식 결혼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익숙치 않은 나에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구분을 해야 했다. 버짓으로 하려는데, 왠지 내가 드레스와 메이크업 등 4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지불하는 것에 약간의 사치라고 생각 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 =_= 나의 들러리가 되는 두 사람은 아이와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이유로 도움을 주는 것도 힘든 마당에 헨스(Hens) 파티까지 계획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과감하게 안하기로 결정. 

그리고 드레스나 악세서리는 Asos.com를 세달 간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며 고르고 골라, 좋아 보이면서도 값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선에서 해결을 했다. 색은 무난하게 살구 빛 나는 드레스. 너무 케주얼 한 느낌이 아닐까 해서 걱정했는데, 워낙 두 들러리가 키가 크고 늘씬해서-_- 


처음엔 들러리가 필요없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결혼식 당일, 내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이 네 명의 들러리가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멋진 스피치도 그렇고 내가 정신없는 사이에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오가며 챙기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아웃사이더인 나에게 이런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건 정말 신기한 일. 





지난 글 다시보기 


웰컴 투 웨딩월드 1 - 어느 나라에서 결혼을 하지? -  http://korean.jinhee.net/364


웰컴 투 웨딩월드 2 - 예산 금액 (Budget) 잡기 - http://korean.jinhee.net/369


웰컴 투 웨딩월드 3 - 베뉴(Venue) 정하기 - http://korean.jinhee.net/368


웰컴 투 웨딩월드 4 - 웨딩 플래너 만들기 http://korean.jinhee.net/377


웰컴 투 웨딩월드 5 - 웨딩 드레스 고르기 http://korean.jinhee.net/379


웰컴 투 웨딩월드 6 - 포토그래퍼, 비디오 그래퍼 찾기 http://korean.jinhee.net/381


웰컴 투 웨딩월드 7 - Save the date와 청첩장 만들기 http://korean.jinhee.net/384


웰컴 투 웨딩월드 8 - 게스트 리스트와 자리 배치 http://korean.jinhee.net/388


웰컴 투 웨딩월드 9 - 혼인 신고와 주례자 구하기 http://korean.jinhee.net/394


웰컴 투 웨딩월드 10 - 케이터링(Catering)과 웨딩케잌 구하기 http://korean.jinhee.net/400





안녕하세요? 뉴질랜드 외국인입니다. 

2주 전, Queen's birthday라고 하여 여왕 생일 공휴일이였습니다. (매년 6월 첫째주 월요일) 그래서 Great Walks 중에 하나인 히피트랙(Heaphy Track)을 3박 4일 간 다녀왔습니다.


Great Walks가 무엇인지 궁금하면 여기를 클릭 - 뉴질랜드에 온다면 체험해야 할 위대한 걷기 명소(Great walks) 9곳

히피트랙에 대한 디테일은 여기를 클릭 - https://www.doc.govt.nz/heaphytrack



히피 트랙은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섬 가장 왼쪽 윗 부분에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래 이미지 참조 5번) 





히피트랙은 시작과 끝이 다른 곳에서 끝나는 한 방향 트랙(one-way)라 셔틀 버스나 비행기 또는 차 리로케이션(car re-location)등을 이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희가 사용한 업체는 여기 - http://www.trekexpress.co.nz/ 넬슨(Nelson)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가 있어서 넬슨 > 히피트랙 출발 지점, 히피트랙 끝 지점 > 넬슨으로 다시 돌아오는 셔틀까지 왕복으로 이용하였습니다. 비용은 1인당 왕복 $180불


어느 쪽에서 부터 시작하든 상관은 없지만, 저는 히피 트랙 웹사이트에 나온 것 처럼 북쪽 브라운 헛(Brown Hut)부터 트래킹을 시작하였습니다.





총 3박 4일 일정으로,

첫쨋 날 - 17.5km 패리 새들 헛 숙박 (Perry Saddle Hut - 헛의 뜻은 산장) 

두쨋 날 - 12.4km 쌕슨 헛 (Saxon Hut)

셋째 날 - 32km 히피 헛(Heaphy Hut)

넷째 날 - 16.2km 끝 


헛(Hut)을 이렇게 예약 하였습니다. 

뉴질랜드 모든 트랙은 헛이나 캠프사이트(텐트)를 반드시 예약하고 가야 1박을 할 수 있으며 예약은 여기서 -  히피 트랙 예약하러 가기 (영어)

 



히피 트랙 총 길이와 산 높이




가기 전 준비물 (먹을거가 좀 덜 들어갔네요) 

6월이면 뉴질랜드는 겨울이라서 다른 산행보다 두꺼운 옷과 갯수가 많이 늘었고, 장갑과 머리에 쓰는 비니 등이 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침낭을 겨울용을 가져가서 부피가 커졌네요. 

오른쪽에 비닐은 옷과 침낭을 넣은 후에 가방에 넣었는데, 비가 오게 되면 가방이 젖게 되고 그 안의 내용물도 다 젖기 때문에 비닐로 한번 더 감싸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젖을 경우를 대비한 추가 옷과 양말 등. 






넬슨에서 셔틀버스를 아침 일찍 탄 후, 히피 트랙 시작 점에 도착하니 오후 12시 쯤이 되었습니다. 

브라운 헛(Brown hut)에서 출발 전 찍은 사진




첫날 트랙은 5시간 정도를 올라가기만 하는 트랙이였습니다. 




히피 트랙은 비가 많이 오는 편인데, 저희는 운이 좋게 날씨가 좋았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산 너머의 전경





브라운 헛(Brown hut)에서 패리새들 헛까지는 그다지 지루한 오르막길이지만 마지막에 히피트랙에서 가장 높은 뷰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12시 30분쯤에 출발한 산행은 첫쨋 날 머물 숙소까지 대략 5시간 정도, 일몰이 거의 끝나가서 어둑어둑해 질때쯤 도착했습니다. 아무래도 겨울 산행이라 해가 빨리 지네요. 저 멀리 1km를 남겨두고 찍은 첫째 날 머무를 산장의 모습.






도착 후 저녁을 만들어 먹습니다. 뉴질랜드에서 1박 이상 하이킹을 한다면 먹을 것과 냄비 등 모든 것을 싸와야 합니다. 

근처 수퍼나 먹을 것을 산다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고, 저녁을 만든 후 남은 쓰레기도 다 가져와야 하는,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죠. 한국과는 많이 다릅니다. 샤워 시설-_-은 없고, 재래식 화장실이 아닌 게 다행일 정도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세수만 하고 끝냅니다.



이 날 저녁은 한국 햅반과 3분 카레. 한국 햅반은 하이킹 할 때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식량입니다. 드라이 푸드(Dried food)라고 해서 하이킹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무게가 가벼운 음식을 구매할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햅반과 3분요리, 또는 라면 등을 산행할 때 가져갑니다. 싸고 훨씬 맛있음. 






다음 날 아침, 헛 앞에서 한 장. 

히피트랙의 몇 산장들은 최근에 지어져서 넓고 깨끗합니다. 화장실은 그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식 재래식은 아니라 훨씬 낫..지만 그래도 재래식





두째 날은 총 12.4km 만 걸어서 시간이 많이 여유로웠습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다양한 식물들을 발견했는데 다른 트랙들보다 히피 트랙이 더 다양한 종들이 많았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하얗게 눈처럼 이쁜 식물



히피트랙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부분은 바로 패리 새들 헛에서 제임스 맥케이 헛까지 펼쳐지는 평평한 길입니다. 








정오쯤에 도착한 그 다음 헛 고랜드 다운스 헛(Gouland downs hut), 연식이 좀 된 헛이라 작았습니다.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려 앞에 피크닉 테이블에 앉았는데.. 생각치 못했던 손님.





바로 웨카 (Weka)가 먹을 것이 없는지 우리 베낭을 뒤적이기 시작합니다. 닭만 한 크기의 웨카. 내 가방이 만만한지 내 가방만 노려봄-_-





주머니에 먹을 것을 발견했는지 집요하게 꺼내는 이 녀석-_- 사람들이 그다지 무섭지 않은지 가까이 가도 도망갈 생각을 안 함-_- 





한바탕 웨카와 실랑이를 벌이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은 햄 치즈 샌드위치. 1시간 정도 휴식 후 다시 걷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걸어가다 발견 한 이 새.. 타카헤(takahe) 멸종위기로 삼림청에서 관리하고 있는 이 새. 우연히 발견 한 이 새. 히피 트랙 야생에 총 30마리만 풀어놨는데, 그 중 4마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멸종 위기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주지 말고 거리 간격을 두어야 합니다.






걷다보면 나오는 강,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약간 아이슬란드 처럼 보이기도




고랜드 다운 헛과 쌕슨 헛 사이에 있는 유명한 장식물, 부츠 폴(Boots pole). 누군가가 망가진 부츠를 달아놓고 간 이후 여러 사람들도 여기에 부츠를 남겨놓고 가서 이렇게 부츠 탑이 만들어졌네요. 그 밑에 부츠 주인이 남겨놓은 글이 인상적이였습니다.





두째 날에 머물 쌕슨 헛(Sexon hut)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도 아담하니 고즈넉한 분위기.




헛의 내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두째 날은 13km도 안되는 거리라 여유롭게 하이킹을 마쳤고, 헛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좀 넘어서 사람이 없었네요. 

물론 저녁 시간 되니 헛이 사람으로 가득 차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헛 전부를 누렸던 30분이 너무 좋았네요. 





저녁을 먹고 7시쯤 되어서 산장 밖에서 본 밤 하늘은 최고.







나머지 일정은 다음 글로.. 

히피 트랙말고 다른 트랙의 글을 보고 싶으면 아래 링크 참조하세요.








지구 남반구에 위치한 뉴질랜드, 한국의 뜨거운 여름이 6월의 시작을 알린다면, 여기서 6월은 추운 한 겨울의 시작이다. 

추워지는 날 만큼 감기와 같은 몸살을 앓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좀비처럼 생겨나는데, 마침 내 옆자리에 앉는 S도 감기 걸린 여자친구 때문에 감기가 옮았다. 오랫만에 회사에 출근 한 S, 도착하자 마자 기침부터 시작한다.


"와우, 너 목소리가 완전 갔어"


"응 알아 콜로러로로로코롴롴로러로콜코록"


할아버지 목소리를 내는 S, 며칠 동안 집에만 박혀 있으니 지겨워서 몸이 다 낫지 않았는데도 출근했단다. S는 은근 Sick Leave를 많이 쓰는 편인데 (씩 리브 - Sick leave 병가) 이번에는 정말 많이 아프구나 싶었다.





Sick Leave (씩 리브 - 병가)


뉴질랜드 씩 리브는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고용한 곳에서 6개월 이상 일을 했다면 1년에 5일은 씩 리브로 쓸 수 있으며, 씩 리브를 써도 급여는 지급된다. 자신 뿐만이 아닌 가족이 아프거나 부상 당해서 돌봐야 할 상황이 왔을 때도 씩 리브를 쓸 수 있다. 다만 3일 연속을 쓰게 된다면 회사에서 처방제나 의사 소견서 등을 요청할 수 있는데 이건 아프면 처방전 같은 것을 증명하는 건 한국도 마찬가지 인듯 하다. 만약 3일 이상 씩 리브를 썼는데도, 증명할 수 없거나 하면 매니저의 재량과 회사에 판단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정확한 정보는 뉴질랜드 정부 홈페이지에서 확인 - https://www.govt.nz/browse/work/sick-leave/







회사는 아프면서까지 일을 시키지 않는다.



S가 회사에 도착한지 10분이 채 되지 않아 S 옆자리에 앉는 여성 직원 R이 도착했다. R이 가방과 스카프를 푸는 동안 S의 기침소리를 듣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S의 매니저 J에게 다가가


"J, S 집으로 보내버려줘~"


그러자 곧바로 J는,


"S, 너 아무래도 집에 가서 좀 쉬는 게 좋겠다"


그래서 회사에 온지 얼마 안 된 S는 30분도 채 못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_- 강제로 보내버림-_-





한국은 직원이 감기 기운이 있든, 암이 있든 간에 아프면서도 꿋꿋이 나옴으로써 보여주는 충실함 또는 성실함을 강조 또는 강요 받는다. 몇 년 전 (몇 년 전으로 까지 올라갈 것도 없다) 우리는 IT기업의 개발자가 밥 먹듯이 야근을 하며 프로젝트를 하던 중 암, 스트레스 또는 과로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뉴스로 전해 듣는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커뮤니티 루리웹이라는 웹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어느 한 개발자의 죽음에 관련된 글이다. 그 개발자는 암으로 추정되는 진단을 받았고, 추가 정밀 검사를 해야 하는 심각한 상태였다. 그의 상사는 그 개발자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 때문에 정밀 검사하고 나서 다시 출근 하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였다. 



해외에서는 아픈 몸을 끌고 일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반가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지양하는 편이다. 감기 같이 옮기 쉬운 질병 같은 것들은 한 공간에서 일함으로 인해 전염 될 확률이 높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일의 효율을 반감시킨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굳이 회사에 나와서 질병을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며 병을 뿌리고 다니지 말라는 것이다-_-... 그리고 혹시나 직원들이 아프지 않더라도 균이 퍼져 그들의 가족까지 아플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뭐 나쁘게 말하자면 혼자 아프라는 이야기....)





그래서인지 뉴질랜드에서 병가를 내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며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꼭 아프지 않더라도 몸의 컨디션이 저조할 때도 씩 리브를 쓰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요새 한국은 아직도 눈치를 보며 병가를 쓰는 지 궁금하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한국 직장인 분은 댓글로 요새는 어떤지 글을 남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뉴질랜드 외국인입니다.

저도 해외에 살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분들의 블로그를 둘러봅니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 각 나라에서 이방인으로서 자기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분들을 보면, 저도 영감을 받고 더 열심히 살아야 겠구나 라고 느끼면서도, 부럽다 라는 생각을 가끔씩 가지기도 합니다. 


뉴질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영어를 좀 더 잘하고자 영어권 나라를 선택한 것입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신청까지 다 해놓고 가질 않았고,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는 뽑히기 힘들다고 하고, 뉴질랜드가 비자를 얻기 제일 쉬웠습니다. 영국이나 미국같은 곳은 물가가 비싸서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네요.


제가 들리는 블로그 중에 영국에 사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의 블로그를 보면 영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런던에 놀러 가보니 확실히 큰 도시긴 합니다. 우리가 특별 전시를 해야 만 볼 수 있는 마그리트나 앤디 워홀의 그림이 흔하게 한 벽면에 걸려 있고, 런던에서 처음 관람한 뮤지컬은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신선한 충격이였습니다. 에딘버러는 그냥 시내 자체가 역사였습니다. 뉴질랜드는 그런 역사에 비하면 오래된 것은 고작해야 100년이 좀 넘은 건물들입니다. 오래 되어봤자 150년이죠. 600년 전에 지어진 건물과 비교를 할래야 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 천년 쯤 된 나무들은 있네요.






제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나라마다 저 마다의 라이프 스타일이 있습니다.

나라 선택이 삶의 질은 물론이거니와 방향 등 모든 것을 바꿉니다. 뉴질랜드는 마치 '자연이 좋다' TV프로나 청산별곡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좋은 나라입니다. 아이를 키우기에 정말 좋은, 그래서 키위들도 20대에는 큰 도시에서 신나게 놀다가 가정이 생기면 다시 뉴질랜드로 회귀하기도 합니다.


반면, 자신이 성공하고자 하고, 큰 야망이 있는 친구가 이 곳에 오고자 한다면 그다지 적합한 나라 선택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들도 태평하고, 야망이 큰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이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슬슬 여유롭게 지내다가 나태해 집니다. 

역사나 큰 도시를 좋아한다 해도 이 곳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유명한 가수나 그룹, 셀럽들은 호주 시드니까지 왔다가, 다른 나라로 돌아갈 정도로 뉴질랜드 시장이 작아서 깔끔하게 무시하고 건너 뜁니다..... 한국은 사람도 많고 영화시장이 커서, 영화 배우들이 그렇게 많이 온다던데 ㅜㅜ 


게다가 다른 나라들과 거리차이가 너무 나서 문제는 첩첩산중. 비행거리도 너무 길고 비싸기도 해서 한번 어디 해외로 놀러가려고 한다면 마음을 굳게 먹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고 싶어하는 곳들은 휴양지가 아닌, 크고 오래 된 나라들입니다. 마치 가수 이효리씨가 "자연이 지겨워! 도시! 도시에 가고 싶어!" 라고 외치는 것 처럼 저는 다른 나라에 가면 보타닉 가든은 안 갑니다-_- 자연은 뉴질랜드에서 지겹게 보니까요. 


저는 어디서는 적응을 잘 하는 편이라 여기서도 잘 살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든 다시 선택해서 살겠다 하면 20대에는 뉴질랜드에 오지 않고 좀 더 다이나믹한 곳에서 살고 싶네요 -_-a 이상 뉴질랜드 시골 구석에 살고 있는 뉴질랜드 외국인이였습니다. 



* 첨부 사진도 죄다 풀떼기-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