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뉴질랜드 외국인입니다.
오늘은 페이스북에 뉴질랜드 1.5세대가 남긴 글을 보고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고민이 많은 글이면서도 솔직한, 뉴질랜드에 온 이민 1세대인 저의 관점과 다른 관점을 가진 세대가 바라 본 뉴질랜드는 어떤 것인지 알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식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무리하며 부모가 선택한 길이 자녀들에게 과연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깨우칠 수 있는 글인 것 같습니다. 내용이 좀 길지만, 공감이 가기에 술술 읽힐 것입니다.
중세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꼭 귀족으로 태어났을 것만 같은, 영국혈통의 키위 친구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Dae-Won when did you come to NZ? (대원, 너는 언제 뉴질랜드에 왔어?)"
키위 친구들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경우도 있지만, 저 같은 경우는 질문의 타이밍과 정황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질문 뒤에는 "너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됐지?" 라는 암시가 묻어납니다. 조금은 부끄러운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1.5세대의 삶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혹 모르겠습니다, 이번 글도 많은 뉴질랜드 한인 분들의 공감을 사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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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30일, 뭔 시골인가 싶었습니다.
서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따라 뒷좌석에 앉은 초등학생 꼬마 아이가 떠올린 생각이었습니다.
아이가 입은 Be the Red, 조금도 색깔 빠지지 않은 이 새빨간 티셔츠는 마치, 아직 조국을 향한 열정이 채 빠지지 않은 아이의 애국심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계속해서 아이는 궁금해했습니다,
눈을 어디로 돌리던 왜 다 초록색이어야만 할까?
한국의 높디높은 건물들에만 둘러싸여 살아왔건만 왜 이곳은 다 평평해야만 할까?
저 소들과 말들, 양들은 어찌 우리 인간과 같은 공간에 공존하고 있을까?
이 나라 사람들은 고기를 안 먹는 걸까?
이야기보따리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자면 한두 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다 싫었습니다. 길거리에 맨발로 돌아다니는 키위 분들이 천박해 보였습니다. 학교 친구들 더러는 다 찢어진 옷을 입고, 더러는 신발도 안 신고 오고, 더러는 요플레를 손가락으로 퍼먹고, 심지어 말도 안 통하고.
어쨌거나 참 순수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소한 것에 바보처럼 실실 데고, 모든 영역에 적극적이며, 뛰어다니는 것을 참 좋아들 하고, 대체로 키위 친구들은 감정을 쉽게 숨기지 못하고 표정에 다 드러나는 어린아이들 이었습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시겠지요? 설명 드리겠습니다
우리 한국에는, 적어도 제가 자라온 한국 문화 안에서는, 뉴질랜드 문화와 달리 우리들의 자신감을 꺾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억 누르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예시로는
"아... 존나 쪽팔려..."
"그런 거 왜 해?"
"귀찮아"
학생 때 뭔가 너무나도 흔히 들었던, 자주 사용했던 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뭐가 그리 쪽팔리고, 뭐가 그리 귀찮아서 어릴 적 뉴질랜드가 나에게 제공했던, 사소하지만 어릴 때만 누릴 수 있었던 귀하디 귀한 기회들을 외면했을까... 그때 당시 제가 느꼈던 한국 문화는, 적어도 저의 세상은 그러했습니다. 적극적이면 놀림감이 되고, 그 나이 때답게, 어린아이 답게 행동하면 바보 같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쪽팔려 할 줄 알고, 귀찮아할 줄 아는 것이 '멋'의 정의였고, 나대지(?) 않는 것이, 튀지 않는 것이'옳다'라고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학생분들, 지금도 이와 같은가요?
아이는 참 유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키위 친구들은 그의 수준과는 걸맞지 않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한국말은 너무 잘하는데 이곳에 와서는 벙어리가 되어야만 하고, 마치 2살짜리 아기가 된 마냥 굽히고 들어가 영어를 하나하나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은, 국가의 법뿐만 아니라 문화도 따라야 한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 말 일 것입니다.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몇 명 없던 한국인들과 노는 것이 편했습니다. 정착 후 몇 년이 지난 후 저의 모습은 키위도 한국인도 아닌 애매한 정체성을 띄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한국 유학생들에게 왕따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혼자이길 택했습니다. 친구가 너무 고팠지만 그래도 혼자가 편했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를 친구 없이 혼자 놀았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저에게는 한국에 있을 때 친구들과 놀며 배운 스타크래프트 (컴퓨터 오락 게임) 가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뉴질랜드는 저에게 현실이었고, 저는 그 현실에서 도망치길 원했고, 도피 장소는 컴퓨터 속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은 컴퓨터 안에 있습니다.
저는 그저 그렇게 변화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아빠, 아빠 어렸을 때는 컴퓨터도 없었는데 무슨 재미로 놀았어? 요즘 애들은 다 피시방 가서 노는데..."
"아빠 어렸을 때는 동네 친구들이랑 모여서 진짜 재밌게 놀았어. 너희가 논답시고 컴터 앞에서 시간 보내는 거, 진짜 불쌍한 거야"
아버지의 이 말은 성인이 되고서야 깨닫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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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자 한국 친구들이 많아졌고, 현지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를 더 멀리하게 됐습니다. 문화 인지, 고정 관념인지, 조국의 자부심 때문인지, 제가 문득문득 느끼는 것은 우리 한국인은 외국인을 손가락질하며 인종차별 인종차별 하지만, 정작 우리 한국인들이 더 심할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을 나누겠습니다.
현지 친구들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똘똘 뭉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보면 늘 한국인들 (어쩌면 중국인도)만 큰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 저는 20~30명 되는 한국인들과 몰려다녔고, 우리들 무리에 속하지 않고 현지 친구들과 노는 아이들을 "저 새끼 키위들이랑 놀자나"라며 깔보곤 했습니다. 저는 뉴질랜드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지만, 속으로는"한국인이랑 노는 게 훨씬 재밌는데 왜 굳이 키위들이랑 놀지" 생각하곤 했습니다. 주변 1.5세대 분들 중에 영어를 잘 못 하시는 분들이 계시진 않는가요? 아마 저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시간을 보내셔서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2000년도 즈음에 오신 1.5세대 분들, 사연은 달라도 제 이야기를 공감하실 분들 많이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정체성이 참 애매합니다. 16살 부모님의 노력으로 시민권을 취득한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한국인인가? 나는 뉴질랜드 사람인가?"
한국인이라고 하기엔 한국 문화에 너무나도 뒤처져 있었고, 키위라고 하기엔 영어도 부족하고 현지 문화도 이해를 못 하는 한 명의 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애매하지 않습니까? 저는 무엇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저 자신을 소개할 때 뭐라 소개해야 했을까요. 오랜 혼동과 번뇌 끝에 저 만의 정의를 내렸지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왜나하면 저는 다른 1.5세대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댓글에 나눠주심이 어떠할까요?
이러한 저의 배경으로 인해, 10년 넘게 뉴질랜드에 거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약 4년 전까지만 해도 영어에 대한 큰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변하고자 하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고, 지금은 영어를 큰 어려움 없이 유창하게 구사합니다. 그렇다고 현지인 수준은 아닙니다. 뭔가 5프로... 아니 그 이상까지도 부족하다 느낍니다. 예시로는 키위 친구들이 농담을 던지면 모두가 웃고 있을 때 저 혼자만 웃지 않습니다- 개그 코드가 이해되지 않거든요.
저는 17년 전에 하지 못한 숙제를 만 스물 다섯의 나이가 된 지금에서야 하고 있습니다. 동정이나 위로를 바라고 쓴 글이 아닙니다. 그저 이 뉴질랜드에는 저와 같은 (생각보다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1.5세대 한인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네 후회가 됩니다. 나는 왜 그때 현지 친구들과 맨발로 드넓은 공원에서 촉촉하고 부드러운 잔디를 밟으며 함께 뛰어놀지 못하였나, 나는 왜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나, 나는 왜 자신을 외롭게 하였나, 나의 어린 시절은 왜 넓디넓은 뉴질랜드라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닌 컴퓨터 스크린 안에 있는 것인가. 이상한 것은 현지인들이 아닌 나였던 것을 왜 몰랐을까.
처음에 언급한 키위 친구의 질문을 조금 더 설명 드리자면, 이 친구도 저를 보면 뭔가 참 애매한 겁니다. 이 아시안 친구는 영어는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뭔가 5% 정도 부족한 것 같고, 농담하면 마치 키위 문화를 모르는 사람처럼 이해를 못 하고, 어떨 때는 키위 같으면서도 어떨 때는 한없이 한국인처럼 행동하니, 도대체 이 친구는 뭘까 하는 마음에 위와 같은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제 삶의 17년을 농축해서 한장의 그림으로 표현드리고 싶은 저의 욕심이, 방향성과 두서 없는 글을 남기게 만든 것은 아닌가 우려가 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1.5세대 분들이 결코 저와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주변만 봐도 소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바램으로는 현재 학생신분으로 계신 한인분들께서는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참 좋은 땅입니다. 우리 모두 좋은 땅에서 좋은 시간을 누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번 저의 글이 여러분께 민폐가 되지 않았고, 이번에도 많은 뉴질랜드 한인분들의 공감을 얻는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한번씩 저의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이상 뉴질랜드 1.5세대 생활담이었습니다.
<Dae Won Suh>님의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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