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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JOKER), 보통 사람이 미치광이로 변하는 과정

뉴질랜드 외국인 2019. 10. 2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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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보헤미안 랩소디> 이 후 트레일러를 보자 마자 영화관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영화.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제목과 같다. 보통의 사람이 어떻게 미치광이로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과정을 그린 영화다.

 

아서(Arther)라는 청년이 아픈 엄마를 보살피며 사는데 겪는 여러 문제들 - 특히 자기 의지로 웃음을 제어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많은 사건들이 생긴다. 그런 그가 더 궁지에 몰리게 된다. 고담 시가 사회복지를 줄임 으로 사회복지 부서를 폐지시키고, 사회복지사는 무직, 그나마 상담을 받던 아서도 더 이상 사회 복지사에게서 약물 처방을 받지 못한다. 사회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 수록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사회가 팍팍해 지니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로 더 힘들어진다. 타인을 보는 시선이나 대하는 방식은 더 공격적이 되고 방어를 하게 된다.

호의나 선의로 베 푼 행동들은 남들에게 오히려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나의 선의가 상대방의 싸늘한 반응과 공격으로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친절한 건 부질 없는 짓이야. 나만 잘 살면 돼."

 

 

가슴이 아팠던 것은 아서는 그 누구보다도 남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약자들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 왔다는 것이다. 버스 앞에 있는 아이에게 웃음을 주었고, 곤경에 처한 여성을 도와주기 위한 간접적인 일을 했으며, 병원에 아픈 환우를 위해 퍼포먼스를 했다. 어떻게 보면 남을 괴롭히는 일이 몸에 밴 멀쩡해 보이는 남성들보다 더 착한 심성을 가졌던 사람이다. 만약 아서가 그 세 남성과 같은 교육과 환경, 그리고 제대로 된 부모를 갖춘 곳에서 자라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에게 친절했던 사람이 그의 곁에 한 두명이라도 있었다면? 철 모르는 10대 아이들에게 공격 당했던 아서는 조커라고 하기에 나약한 존재로 보인다.

 

모두의 삶이 공평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공평이 더 확대되는 일을 막는 것이 사회 구성원과 제도가 해야 할 일이다.

이미 코너에 몰려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던 아서가 더 이상 기대어야 할 수입과 지원 조차도 없어지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더 좁아진다. 티비 앞에서 몽상을 하며 현실을 도피하는 방법조차 더 이상 자신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그런 위치에서 자기를 버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 이었을까. 미치는 방법 밖에 없지 않았을까.

 

DC나 마블 코믹물 영화의 단순한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2차원적인 케릭터에 비해 <조커>는 코믹물을 넘어선 인간 심리를 아주 상세하게 표현했다. 이 영화는 질(Texture) 자체가 다르다. 같은 영화를 본 지인들은 대부분 "Dark (어둡다)."라는 평이 앞선다. 맞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씁쓸함을 느끼며 극장을 나올 것이다. 아서가 조커로 변하는 과정에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서 같은 사람을 주위에서 보더라도 우리는 친절하지 않았고 방관 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삭막하게 살 게 된 것일까. 아서의 말대로, 

 

"Is it just me? or is it getting crazier out there."

 

 

올해 봤던 영화 중에 제일 좋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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